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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빙.잡/역사상식

문익점 목화씨를 들여오다 공민왕의 사절단

by 서리니 2022. 9. 26.

원나라의 복종을 원치 않았던 고려 공민왕의 반원 자주 정책이 시행되면서 원나라와 고려의 외교는 크게 악화되었다. 이에 공민왕은 사절단을 몇찰 보내어 이런 악순환을 해결하고자 하는데, 그리하여 1363년에도 사절단을 파견하게 된다. 이번 행차에서 문익점은 문서 기록을 담당하는 서장관의 직책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문익점 목화씨
문익점 목화씨

고려의 위기,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서 재배한 문익점

하지만 이때 원나라는 원에 머물렀던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책봉하고, 최유에게 군사 1만명을 주면서 고려를 칠 것을 명령한 느데, 다행히 최유가 최영과 이성계의 고려군에게 패하면서 공민왕은 왕위를 간신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문익점은 이 어수선한 시기에 원나라에 머물라다 1366년에 돌아왔는데, 이때 목화씨를 구해 붓두껍 속에 몰래 숨겨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문익점은 귀국과 동시에 원나라에 있을 때 덕흥군을 지지하였다는 의심을 받아 결국 파직에 이른다.

이렇게 되면서 문익점은 고향인 경남 산청으로 돌아와 장인인 정천익과 함께 3년간의 노력 끝에 목화 재배에 성공을 하는데, 또한 문익점과 정천익은 실을 뽑는 방법과 옷감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전국에 보급을 하였다. 이 당시에는 베나 모시를 주로 사용하던 의생활에 대혁신을 가져왔고, 추운 겨울철을 조금은 더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큰 공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