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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의 마지막 막부, 그의 생애

by 서리니 2017. 10. 21.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의 마지막 막부, 그의 생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후계, 뒤를 이어 일본의 마지막 막부인 도쿠가와 막부를 세웠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떤 인물일까?

그는 지금의 나고야에서 동쪽으로 많이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 사무라이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유년시절은 평화롭지만은 않았는데, 일곱살 나이에 군사적인 어려운 상황에서 슨푸(지금의 스즈오카 시)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이마가와 가문의 인질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죠,,





도쿠가와 이에야스,とくがわいえやす



슨푸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군사. 행정 기술을 익히게 되었고, 이미가와 가의 군대를 통솔하면서 군사적 경험을 쌓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그의 가문은 몰락하고 말았으며, 아마가와 요시모토가 오다 노부나가와의 전투에서 사망한 것을 계기로 하여 그는 고향인 오카자키로 돌아가 가문의 영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달 후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고 가문의 영지를 다스리를 일에 힘쓰게 되죠,,




1560년대 후반에는 이마가와 가문이 몰락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기회를 이용해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데,,

그는 유력한 무장인 노부나가와의 동맹에 의존해 계속되는 내전의 역경을 이겨내는 한편 천천히 영토를 확장하면서 1580년대 초반에는 매우 강력한 다이표가 되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とくがわいえやす




1582년 노무나가가 죽고 그의 부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노무나가의 지위를 얻게 되고, 당시 전성기를 구가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최대 라이벌로 부각되었으며 두 사람 사이에 큰 전투가 몇차례 벌어졌지만 결국 승부는 결정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충성의 맹세를 하게 됩니다.

1589년부터 시작된 오다와라 성 점령전에서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에게 협력하여 전쟁을 하였고 그 땅을 영지로 받게 됩니다.

그는 어촌인 에도 가까이에 있던 작은 요새와 농경지에 수천 명의 가신들과 그들의 군사장비 및 식솔들을 신속하게 이주시켰으며, 그는 몇몇 유력 다이묘들과는 달리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참가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 대신 군대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자신의 영지가 가능한 한 안전하게 방비되도록 하였는데, 또한 에도 부근의 대규모 농경지를 자신이 임명한 관리의 직할로 두도록 함으로써 주민들에게 가능한 많은 식량이 보급되도록 했으며, 균등 과세를 위해 토지조사를 세밀히 실시 하였고, 성을 개축하고 도시의 성장을 촉진시켰으며 주민들의 원활한 식수보급을 위해 토목사업을 벌였습니다.

그리하여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을때는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다이묘가 되었던 것이죠, 또한 이 당시를 기회로 유력 다이묘들 사이에서 다시 큰 권력투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밑거름을 바탕으로 결국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とくがわいえやす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장 먼저 진행한 일은 다이묘들의 재배치하고 충성스러운 가신을 가까이 배치하고 적대 다이묘들의 영토를 빼앗았으며, 여러 기간에 걸쳐 다이묘, 궁중세력, 승려, 가신들을 견제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고 감독기관을 두었는데 당시 실권은 없었지만 의례적인 권위는 가지고 있던 황실은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쇼군'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이로써 일본 최강의 다이묘인 이에야스는 천황의 이름 아래 평화를 유지하는 임무를 공식적으로 부여받게 됩니다.





1604년부터 1614년까지 그는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다이묘들을 동원해 에도 성을 개축했으며 수년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커다란 석재와 목재를 운반하기 위해 수천 척의 배와 수만명의 인원이 동원되게 됩니다.


그가 죽었을 때에도 성은 넓은 해자, 높은 석별, 나무로 된 긴 흉벽, 큰 문루, 곡식과 동전이 가득한 넓은 내화창고 등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성이 완성되었으며, 주면의 저택에서는 다이모들이 인질생활을 했는데 이제 에도는 장인, 상인, 관리, 노동자들이 활발한 항구도시로 번영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1615년 고향인 슨푸로 돌아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듬해인 1616년 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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